가상의 융단을 타고 경계를 넘어서다

브레인 vol.3

[기획]한국적 창의력이 미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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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테마 | . 기자 |입력 2013년 01월 17일 (목)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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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적 창의력이 미래를 이끈다

<1> 도전의 바다에 꿈의 상선을 띄우다
<2> 가상의 융단을 타고 경계를 넘어서다
<3> 정신의 수정구슬 속에서 미래를 보다

프로슈머 경제의 첫 수혜국은 고도로 숙련된 지식 노동자들을 보유한 한국, 인도, 일본, 중국, 미국이 될 것이라고 토플러는 예측한다. 이는 물질 뿐 아니라 매체와 정보의 생산성 권력의 주체 변화를 내포한다. 2006년의 인물로 ‘YOU’를 선정한 <타임>지 또한 이러한 변화를 예증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새로운 시대에는 프로슈머prosumer(생산자인 producer와 소비자인 consumer의 합성어, 앨빈 토플러가 그의 책 《제3의 물결》(1980년)에서 처음 제시한 용어)가 ‘이름 없는 영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화폐경제 안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견고했던 경계가 변화의 전환점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사회적인 프로슈머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30대 이하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미 일상 속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40~50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프로슈머들이 적지 않다.

프로슈머라는 말이 낯설다면, 발품 팔아 은행에 가는 대신 인터넷으로 계좌이체 하는 아버지, 주말마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딸, 가정용 혈당계로 자가 치료를 하며 제품 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어머니를 돌아보면 된다.

한국은 사회적 프로슈머의 수가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정보의 소비와 생산성에 있어 세계가 주시할 만한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외적으로 볼 때 이러한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한 인터넷의 보급률이지만, 내적으로 그러한 보급률을 필요로 했던 것은 역사적 배경과 그로 인한 잠재된 표현욕구의 분출, 그리고 이에 부응하여 등장한 다양한 웹 서비스의 등장을 들 수 있다.

변화와 혁신을 먹고 자란 역사

이민 갔다 돌아온 교포는 물론, 몇 년 만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 잠시 유학하고 돌아온 학생까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많이 변했다’라는 말이다. 한국은 변화하는 힘을 스스로 지닌 존재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어떤 길이든 반드시 선택해야 했던 격동의 역사 속에서 길러진 자생력에 가깝다.

사실 역사 속에서 변화와 혁신은 전쟁 속 폐허를 이겨내기 위한, 독재에 쓰러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부채로 쓰러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매번 일어나는 법을 배우면서 채득한 것이 변화와 혁신에 대응하는 속도였다.

근대는 창조성이 드러나기 힘든 산업화의 시대였다. 국가는 사회를 통제하기에, 학교는 통제하기 쉬운 인간형을 길러내기에 바빴다. 공장은 좌우대칭의 반듯한 모양을 찍어내기에 분주했고 찌그러진 것은 인간이든 제품이든 나쁜 것이었다. 흑과 백은 선명했고 좌와 우는 낙인에 가까웠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위험한 것이었고 개인과 창의력을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한 구조가 민주화라는 변화 속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면서 ‘표현하라’는, ‘도전하라’는 요구로 선회했다. 이러한 요구는 개개인의 가치관에 혁신의 배를 띄우게 했다. 그리고 그 배에 돛이 되어준 것이 ‘386세대’라는 말의 등장에서도 알 수 있듯 컴퓨터의 기술이었다. 신기술은 혁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도구였고, 이후 인터넷의 등장은 개개인의 존재를 표출해주는 폭풍이 되었다. 

현실을 움직이는 가상

사후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로 남아 있는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유작 《위대한 혁신》에서 지식에 기초한 혁신을 ‘최상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지식은 변화를 읽는 힘이 된다. 그리고 인터넷과 월드와이드 웹World Wide Web은 가장 강력한 지식 도구가 되었다. 한 개인의 프로슈밍prosuming이 세계의 프로슈머들에게 최강의 도구를 손에 쥐어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설사 웹 사이트의 모든 정보 중 95%가 무의미, 부정확, 무분별하다 해도 여전히 영양가 있는 1억 5천만 개 이상의 정보들이 남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신선한 사고방식들을 창조해내도록 돕는다.

사실 웹은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세계다. 해체하고 또 해체해도 0과 1만이 남는 가상의 ‘비트 도시City of Bits(윌리엄 미첼의 저서명에서 인용한 말)’다. 앨빈 토플러가 인터넷 콘텐츠를 역사상 가장 큰 ‘자발적 프로젝트’라고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이다.

그런데 그 가상들이 지구 전체를 감싸는 연계망을 가지고 현실을 움직이고 있다. 한 개인의 사랑을 받아주게 하는 일에서부터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어 각성을 촉구하고, 범지구적 환경에 함께 머리를 맞대게 한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이와 같이 현실을 움직이는 가상의 힘을 보여주었던 경력 때문이다. 국가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가상공간의 논의와 모색이 현실의 지지율 변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의 웹은 꾸준히 프로슈머의 여러 가능성들을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장이 되어오고 있다. 변화와 혁신에 적극적인 국민성, 커뮤니티 수다를 통한 정보 생산, 구전 중심의 체험과 평가들이 지속적으로 발 빠르게 이뤄낸 지식 갱신은 과거 선형적인 구조에서 이룬 논리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의 정보 활용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한 서비스들의 지원사격으로 그 빛을 더욱 발하고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역사 속에서 문화의 중심 토론장은 우리에게는 사랑방, 서구에서는 카페였다. 우리의 사랑방 문화는 일제 강점기와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문화를 형성하는 용도보다는 구국을 위한 모임이나 이념의 토론 같은 민주화를 위한 장으로서의 기능에 더욱 충실했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은 사랑방을 대신할 토론 장소를 찾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대부분 술집뿐이었다. 술로 인한 건강의 위해는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미덕이었다. 그런 사회 구성원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가상의 문화공간은 갈증을 해결시켜줄 수 있는 사교의 장이었을 뿐 아니라 폭넓은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이러한 역할을 한 서비스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 1999년 6월 시작된 ‘다음 카페(cafe.daum.net)’다. 기존 PC통신 동호회와 다르게 자유로운 사용자 중심의 커뮤니티 서비스는 시작 1주 만에 2천200개의 카페를 생성, 현재에는 약 670만 개에 이른다.

초기 친목 위주였던 카페는 ‘정보’, ‘취미’형 카페로 영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이후 정치 및 사회 이슈를 담은 카페로 영역을 확대했다. 2002년 미선·효순 사건, 이라크 파병 등 사회적인 파장이 예상되는 사건에서 카페는 유감없이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카페는 여론을 이끄는 힘을 가진 강력한 집단이 되었고, 시민들의 소리를 거리로 쏟아내 촛불집회의 단초를 마련했다. 16대 대선과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카페는 네티즌의 주장과 생각을 사회에 투영시키며 사이버 정치의 면모를 보여줬다.


책을 넘어선 지식  웹의 가장 강력한 힘은 지식의 배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지식은 권력을 쥔 학자들이나 취득할 수 있는 산물이었다. 세계적으로 글자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신분을 상징했던 시대도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웹은 기존의 지식뿐 아니라 가장 따끈한 현재적 지식을 배달한다. 권력의 위로부터의 지식뿐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지식도 동등한 위치에서 대우받는다. 이제 누구나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서비스의 선봉에 있는 것이 검색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의 ‘지식iN서비스’다. 지난 1월 24일자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를 평정하고 있는 구글과 야후가 버거워하는 네이버의 저력을 지식iN 서비스에서 찾았다.

지식iN의 힘은 경험을 지식화하는 데 있다. 개개인의 경험이 거대한 노하우로 쌓여 새로운 지식을 양산하고 이것을 서로 공유한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도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경험과 지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초기 이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과연 이게 될까?’ 하고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 미국 구글이나 야후, 중국의 바이두와 같은 세계적인 검색엔진들이 지식iN을 벤치마킹한 모델을 선보였지만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용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은 거꾸로 해석해서 ‘근인척이 아닌 사람이 사는 땅은 지켜볼 만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먼저 시비 걸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민족성 아닌가. 

가장 사적인 공유  개인이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웹은 그 한계에 대한 질의를 계속 진행 중이다. 일부 인터넷을 이용한 작가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나체까지 포함한 개인 정보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웹에서 사적으로 공유하는 보편적인 도구가 1인 미디어다. 1인 미디어는 네티즌이 직접 꾸미고 참여하여 자신만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서비스로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1인 미디어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라고 볼 수 있다. 미니홈피가 일반 블로그보다 더 사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촌이라는 촌수 개념 때문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한 개인의 가족 개념을 재구성한다. 부족시대로부터 이어져온 혈연의 끈적함을 뒤로하고 그들은 서슴없이 자신의 관점에서 가족을 새롭게 구성한다.

그 가족 안에서 그들은 위로를 구하고 혼잣말을 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미니홈피는 자살을 감행하거나,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전후사정을 이해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적 실체가 사라진 그곳에서 그의 체온을 느끼며 애도를 표하고 눈물을 흘린다.

1인 미디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세상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1인 미디어에 들어가 보면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항상 행복한 듯이 웃고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우리의 현실이라기보다 바람일 수 있다. 스스로에게 거는 플라시보일지 모른다.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일러스트·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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