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기부하니? 난 착한 소비한다!

브레인 Vol. 18

기획리포트 ; 이기심만큼 강한 본능, 이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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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교육 | 김보희 기자 |입력 2012년 10월 04일 (목)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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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특별한 자판기 한 대가 있다. 천 원짜리 지폐를 투입기에 넣은 뒤, 마시고 싶은 음료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몇 백 원의 거스름돈을 반환해 주머니에 넣지 않고, 기부 버튼을 눌러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이도록 한다. 잔액을 기부할 수 있게 만들어진 기부 자판기이기에 가능하다. 시중에 없는 이 자판기는 한 소셜벤처경연대회에 나온 아이디어다. 만약 실제로 이 자판기가 탄생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기부하는 사람이 많을까? 기부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까?

글쎄,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부하는 사람이 점점 늘 것 같다. 왜냐고? 인간의 이타적 본능이 본격적으로 진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텔레비전 뉴스에는 사건 사고가 넘치고, 기업가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소식도 끊이지 않지만, 그런 중에도 인간의 이타심은 우리 사회의 진화를 꿈꾸며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타 트랜드 1} 재능을 나눠요! 행복이 커져요?????


기부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수 억씩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 홍수, 태풍 등의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일시적인 모금운동? 기부의 대부분을 돈이나 물품으로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재능을 사회와 나누는 기부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프로보노’다.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프로보노(pro bono)는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사회와 나누는 활동을 뜻한다. 이들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운 곳으로 직접 찾아가 무료로 봉사 활동을 한다.

이를 테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교사, 예비 사회적 기업의 법률적 문제를 무료로 해결해주는 변호사, 작은 출판사의 컨설팅을 해주는 경영 컨설턴트 등이 그 예다. 현재 1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프로보노 활동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공헌하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기업들도 자사의 직원들이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지원한다.

비영리조직인 ‘아름다운 재단’은 아이디어가 빛나는 새로운 기부자를 만났다. 기부자의 이름은 ‘현투모(현명한 투자자들의 모임)’로 7명의 멤버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꾸준히 기부를 해오던 사람들로서 주식투자의 목적을 기부에 두고 1년간 기부펀드를 통해 얻은 수익금의 절반을 기부하자는 원칙을 세웠고, 1년 뒤에 수익금 240만 원 중 120만 원을 계획대로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이는 기부의 새로운 형태로, 주식이 투기의 의미가 아니라 선한 목적의 가치투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미국 자선사업가의 대부 카네기의 창업자금이 주식투자로 해서 얻은 것임을 되짚어볼 때 이들의 기부펀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나눔의 씨앗을 뿌린 기부단체로 ‘아름다운 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1%의 나눔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재단은 2002년, 기증받은 물품을 매장에서 판매해 그 이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아주 작은 소비를 통해서도 기부할 수 있다는, 기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다. 

공익을 목적으로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곳에서 활동한다. 2004년부터 활동해온 ‘메시지’는 착한 광고로 사람들에게 지구건강을 함께 생각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기후 혼란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길바닥에 교통사고로 죽은 펭귄 사체 모양을 하얀 스프레이로 그려놓았다. 이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자동차로 인해 북극 펭귄이 멸종 위기에 처했음을 효과적으로 알리며 지구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지구환경과 평화를 위한 기부 모금 활동인 ‘지구시민 1달러의 깨달음’ 운동이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작돼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작은 노력이 모여 우리 사회와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하는 이 운동은 누구나 지구시민의 자격으로 매달 1달러(한국 1천 원, 일본 1백 엔, 유럽 1유로)를 기부해 기아 구호, 문맹 퇴치, 지구환경과 인간성 회복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엔 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한 비영리 국제기구인 IBREA(국제뇌교육협회) 주최로 시작돼 현재 전 세계 10개국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앞으로 1백 개국에서 1억 명이 참여하는 전 지구적 평화운동으로 확대해나갈 전망이다. ‘한 사람의 1달러는 한 생명을 구할 수 있고, 1억 명의 1달러는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슬로건이 지구시민들의 이타심을 크게 움직일 것으로 기대한다(
www.iearthcitizen.org).



{이타 트랜드 2} 착한 소비 열풍, 왜?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초콜릿, 커피의 원료인 카카오와 커피콩이 생산되는 지역은 제3세계 국가들이다. 우리가 달콤한 맛을 즐길 때 제3세계 국가 노동자들은 카카오, 커피콩을 수확하는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정무역 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국가 간에 일어나는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윤리적 소비를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럽 공정무역협회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수익이 초콜릿 가격의 5%라면, 초콜릿 회사와 무역 조직이 얻는 수익은 그것의 14배인 70%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캐나다의 한 어린이 보호재단은 초콜릿 가격이 1천 원이라면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20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결국 카카오 생산자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노동 빈곤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공정무역 제품이 선보인 것은 2004년 필리핀 마스코바도 설탕이 처음이다. 이후 YMCA, 아름다운 가게 등에서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원두커피를 팔면서 언론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입소문을 통해 확산되면서 윤리적 소비, 즉 ‘착한 소비’ 활동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국내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기관은 총 6개인데, 불황기에도 이들의 매출액은 증가세를 보였다. 6개 기관의 합계매출액은 2007년 9억4천만 원에서 2008년엔 28억5천만 원으로 1년 사이에 149%가 늘었다. 특히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제3세계의 생산자를 돕고 연대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착한 소비 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혀 가는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착한 소비는 제3세계 노동자들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12세기에 활동한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최고의 자선은 상대방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더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도움을 받는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하게 놓고 파트너가 되는 것이며, 돈을 빌려주거나 동업하거나 직업을 구해 줌으로써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이타의 모습이다.

돈을 더 주고라도 착한 소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연구가 하나 있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에 관해 연구해온 미국의 조던 그래프먼 박사는 몇 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좋은 일에 기부금 내기와 무관심하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 다음 이들의 뇌를 MRI로 관찰했다. 그 결과 기부금 내기를 선택한 실험 참가자들의 경우,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뇌 부위에 반응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그래프먼 박사는 뇌에서 쾌감을 느끼는 부위와 기부금을 낼 때 반응한 부위가 동일한 것으로 볼 때 이타적 행동이 뇌의 본능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연말이면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돈을 넣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성금을 내기 위해 ARS 전화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기분 좋은 뿌듯함이 이는 것을 느껴봤을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본능적인 만족감을 말이다.


{이타 트랜드 3} 사회적 기업 들어보셨나요?

이런 기업이 있다. 회사 설립 첫 해의 이윤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새해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다시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사회적 기업 ‘뉴먼스 오운’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의 기업이지만, 이 회사의 창업주를 알면 모두가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영화배우 폴 뉴먼이 바로 창업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샐러드 드레싱을 직접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 것을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방부제 대신 겨자씨 성분으로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천연 재료만 사용한 샐러드는 광고 없이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1982년 뉴먼스 오운의 드레싱은 시장에 나온 지 6주 만에 창업 자금 2만 달러를 회수하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첫 해 이후에도 이들은 회사의 이익금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해왔는데, 설립 이후 지금까지 기부 액수가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 뉴먼은 83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았고, 그가 만든 뉴먼스 오운은 사회적 기업의 모범이 되었다.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인 특징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이윤을 사회와 나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사회적 기업이 주목받는 이유다.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의 노동자 수는 1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2009년까지 노동부에서 인증 받은 사회적 기업은 252개로, 규모는 작지만 탄탄한 기업들이 많다.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사회적 기업 ‘동천모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사업장으로 중증장애인 직원이 많다. 모자를 납품해 올린 매출이 2007년에는 12억 원인데, 매년 매출이 늘고 있다. 특히 동천모자는 새로운 모자 아이디어로 기술 개발에도 결실을 맺고 있고, 전문 기업 못지않은 경영 능력을 보여주어 더욱 주목받는다. 이밖에도 기초수급생활자에게 직업 재활의 기회를 주는 사회적 기업들도 생기고 있다. 사회의 문제를 기업이 함께 고민하고, 기업의 방식으로 해법을 찾는 진지한 노력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본다.


{이타트랜드 4} 이타적인 기업이 살아남는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기업문화에서도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한 공익 비즈니스에 대기업들이 발 벗고 나섰다. SK텔레콤은 2011년까지 5백억 원의 기금 조성으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할 것을, 포스코는 내년까지 전국에 3개의 사회적 기업 추가 계획을 밝혔다. 경제학자들이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세계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을 볼 때 이는 자연스런 흐름으로 보인다.

수익과 공익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업이라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런 기업이 미래에 살아남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는 이타적인 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으로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의 경계가 점점 불분명해질 것이며 이는 경제 흐름 속에 이타적인 기업이 사회 공익에 얼마나 기여하느냐가 성공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임을 예측케 한다.

재능 기부 문화, 착한 소비, 사회적 기업, 공익을 중시하는 기업의 변화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이타 트렌드는 이타심이 사회의 경쟁력을 키울 뿐 아니라 나아가 인류의 문명 패러다임을 바꾸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욕망을 실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들어 냈지만, 이기심만큼 강한 본능인 이타심은 인류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글·김보희kakai@brainmedia.co.kr
도움받은 책·《행복한 기부》 토마스 람게,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 구본형 외, 《나눔》 프랑수아즈 바레 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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