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이야기] 분노를 잠재우는 사랑의 힘

강은영 일류두뇌연구소 대표

브레인 97호
2023년 02월 15일 (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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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스킨십의 상관관계

우리 집에서 귀여움과 애교를 담당하고 있는 둘째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라고 한다. 올해 중학생이 될 녀석이 하는 행동이 퍽 귀여워 나는 글을 쓰거나 설거지를 하다가도 두 팔 벌려 힘껏 안아준다. 아마도 아이가 자라면서 잔소리가 늘어나고 내 두 눈에 가득했던 사랑과 스킨십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그걸 느낀 아이는 수시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일 테고. 

신체적 접촉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연관성은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얼마 전 기사에서 ‘첫 만남에서 키스를 하면 사랑에 빠질까?’라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처음 만난 20대 남녀가 30분 동안 5번의 키스를 1분씩 반복하는 실험이었다.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점차 연인처럼 키스하더니 결국 둘은 그날부터 사귀기로 했다. 어떻게 30분 만에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물론 첫 눈에 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키스를 통해 사랑의 호르몬이 다량 분비된 것으로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사람은 90초에서 4분 사이에 상대에게 끌린다고 한다. 실제로 처음 만난 남녀에게 상대방의 프로필을 알려주고 4분 동안 서로 눈을 보게 했더니 남녀가 금세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 사례도 있다. 직접적인 접촉 뿐만 아니라 눈을 바라보는 등의 간접 접촉으로도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

행복 호르몬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반면 사랑 호르몬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행복하거나 안정감을 느낄 때 뇌에서는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항우울제로 쓰이며 행복 호르몬으로 잘 알려져 있다. 행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 없이는 행복을 논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신체적 접촉으로 자극받기 때문에 포옹 호르몬(cuddle hormone)이라고도 한다.

옥시토신은 사랑, 신뢰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출산할 때나 수유할 때, 호감가는 상대를 보았을 때 또는 포옹을 할 때 분비된다.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성욕을 느끼고 산모의 경우에는 아기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된다. 진통 효과와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르티솔의 분비도 막아준다.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과연 사랑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위대한 듯하다.

얼마 전 지하철역에서 술에 취해 난동부리는 남성을 어느 청년이 포옹해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취객은 경찰 두 명이 아무리 제지해도 요지부동이더니 낯선 사람의 포옹으로 울컥한 듯 말을 잊지 못하다가 진정이 되었다. 어떻게 청년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배척했던 사람을 포옹해줄수 있었을까? 이성을 잃고 고함치던 남성은 낯선 이의 침착한 포옹으로 무엇을 느꼈을까?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포옹 한 번이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할 때가 있다.


사랑은 분노를, 분노는 사랑을 억제해

사랑을 단계별로 구분해보자면 처음에 호감으로 시작한 끌림, 좋아하는 감정, 사랑, 그리고 정으로 이어진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뇌 활동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랑의 단계에 따라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다르다. 사랑할 때 가장 중요한 호르몬은 세로토닌으로 사람을 일시적으로 미치게 만 든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표현하듯 상대의 결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는 마약 중독자의 뇌와 똑같이 활성화되나 이들 호르몬은 4~5년이 지나면 효과가 없어진다. 사랑을 단순히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불같던 사랑의 단계를 지나 결혼을 하고 정으로 사는 걸 보면 뇌의 화학작용을 무시할 수도 없다.

오랫동안 금실이 좋은 부부를 보면 느낌뿐만 아니라 얼굴 생김새도 닮아 보인다. 동물도 일부일처제인 경우 암수 구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반면 수컷이 화려하면 일부다처제이고 암컷이 화려하면 일처다부제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랑하면 서로 닮는가 보다. 상대의 모습을 거울삼아 오랜 시간 함께 하니 취향,성격 심지어 얼굴과 풍기는 느낌까지비슷해지는 것이리라.

사랑의 감정은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분노를 억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앞서 살핀 지하철 사례에서도 청년의 포옹이 순간적으로 남성의 분노를 억제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랑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다는 말 자체가 사랑의 필요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네이처》에 게재된 관련 논문에 따르면, 사랑과 분노의 회로는 매우 가까이 있어 서로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즉 사랑은 분노를 억제하고, 분노는 사랑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포나 충격, 분노,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일 때 분노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분노 호르몬은 위험한 대상과 맞서 싸우거나 도망갈 수 있도록 몸의 상태를 바꾸는 신호를 보내는데, 이는 ‘생존’이 목적이다. 맹수 우리에 들어간 아기를 구하기 위해 쇠창살을 벌린 어머니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트럭을 들어 올린 10대 소년이 순간적으로 초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노르아드레날린 덕분이다. 시험이나 시합에서 좋은 성과를 내려고 짧은 시간에 스스로 채찍질할 때도 분노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처럼 분노 호르몬이 순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노르아드레날린이 일상에서 자주 분비되면 피부, 소화기 쪽 혈류가 감소해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쏟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노화를 앞당기고 수명까지 단축시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고 자주 분노하지 않는 것이 좋다. 즉 사랑의 회로를 활성화시켜 분노를 억제하는 것이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사랑 호르몬은 포옹만으로도 분비가 된다. 

프리허그닷컴(free-hugs.com)의 설립자 제이슨 헌터(Jason G. Hunter)는 “그들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모든 사람이 알게 하자”는 가르침을 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2001년에 프리허그 캠페인을 시작했다. 프리허그는 길거리에서 ‘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기다리다가 자신에게 포옹을 청해오는 불특정 다수를 안아주는 행위다.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피폐한 현대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가정과 사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미 20년이 훌쩍 넘은 유행이지만 불신과 분노가 팽배한 현대사회 에서 여전히 필요한 활동으로 보인다.


뇌와 뇌를 연결하는 거울신경

사람을 향한 좋은 감정은 사랑뿐만 아니라 타인과 교감하고 협력하거나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연구에 따르면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과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가족, 친구들의 뇌를 찍어보았더니 같이 아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몸이 아프진 않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는 얘기다. 이는 거울신경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거울신경 덕분에 타인의 행동을 보고 있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뇌의 신경세포가 작동하는 것이다. 보는 것뿐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실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오래 사랑해온 사람끼리 닮는 것도 거울신경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뇌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자극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회적인 관계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뇌 기능들은 모두 양면성이 있고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분노가 있기 때문에 사랑 회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껄끄럽거나 해결하지 못한 관계일수록 분노와 사랑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있을 확률이 높다. 내게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그렇다. 어릴 적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느낌 때문에 오랫동안 미워하고 분노해야 했다.


사랑의 회로를 돌리자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는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인사하며 안아주기, 잠자기 전 안아주기. 바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거르기도 하지만 아들 둘로 인해 잔소리와 호통이 난무하던 집이 조용해졌다. 포옹으로 말보다 몇 배는 강한 가족 간의 정을 나누자거짓 말처럼 오해와 분노, 갈등이 점차 줄어들었다.

인간의 심오함을 호르몬으로 설명하기란 역부족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뇌의 활동을 화학물질의 발현으로 보는 측면은 우리를 단순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둘째아이가 안아달라고 하면 ‘사랑의 호르몬이 필요하구나’ 싶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안아준다. 남편이 설거지할 때 뒤에서 슬쩍 포옹하거나 산책할 때 항상 손을 잡는 것도 우리 부부가 사랑을 지켜나가는 방식이다. 싸운 뒤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을 때도 일부러 사랑의 호르몬이 나오도록 행동한다.

누구든 연습만 한다면 스트레스, 분노 호르몬을 줄이고 사랑의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게 할 수 있다. 말썽꾸러기 사춘기 자녀도,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도 사랑의 회로가 활성화되도록 꾸준히 신체적 접촉을 한다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말없이 한번 안아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 강은영
일류두뇌연구소 대표. 《일류두뇌》,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등을 썼고 ‘체인지 U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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