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래된 책이기에 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죠

[김양강양의 서울에서 여름나기] (3) 동대문 - 청계천 고서점 백석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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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평 남짓한 공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로 2.5m에 세로 5m, 높이 5m의 가늘고 긴 직사각형 상자라고 할 수 있다. 그 좁고 길쭉한 공간에 어림잡아 2만여 권의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평소에 책이라면 휘뚜루마뚜루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읽고 마는 강양에게는 힘든 공간이다. 뭐랄까, 저기 천정에 꽂힌 책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달까.

 


▲ 청계천을 따라 평화시장 1층에는 청계천 고서점들이 줄지어 모여 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있는 책의 존재를 인지한 강양은 불안(?)해 하며 애꿎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동대문에 가서 옷만 사고 오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김양강양이 향한 곳은 바로 청계천 고서점가(헌책방거리)였다. 청계 5가와 청계 6가 사이에 자리 잡은 평화시장 서점가는 무더운 여름 평일 낮이었지만 손님들이 꽤 많았다. 아, 나 왜 이렇게 어색하지.

서점 몇 개를 지나친 뒤 '덕인서림'이라는 간판의 서점에 마음 붙이고 책 하나를 집어들었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하악하악》. 한참을 킥킥거리다가 사장님에게 말을 붙였다.

"여기 계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아직 30년은 안 됐어요. 87년부터 시작했거든."

킥킥거리던 웃음이 잦아든다. 셈에 약한 강양이 머리를 한참 쓰고 나니까 알겠다. 이 사장님은 강양의 동생이 평생 살아온 기간만큼이나 여기 이 자리에서 서점을 해오셨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마어마하시네요!"
"뭐가 또 '어마어마'까지야. (웃음) 이 동네에서 50년 넘게 책 장사만 하신 분들도 얼마나 많은데. 나 정도면 여기서 젊은 편이죠."

 


목포가 고향인 백석민 덕인서림 사장(53, 사진)은 학창시절 멀리하던(?) 책을 스무 살이 넘어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뒤늦게 책 맛에 빠진 그는 23살부터 27살이 될 때까지 아는 분의 서점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때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어요. 아침 일찍 서점 가서 이 책 저 책 읽다가 밤에 해 떨어지면 집에 오는 날들의 반복이었지. 문득 이럴 거면 내가 서점을 차려야겠다 싶더라고요. 이왕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서점가에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청계천에 자리를 잡게 됐죠."

청계천에 고서점들이 생긴 것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본격적으로 서점들이 모인 것은 196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청계천은 지금보다 좀 더 자연스러웠다(?). 그때는 너도나도 힘들고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청계천을 따라 평화시장에 모이기 시작한 헌책방에는 신학기만 되면 교과서부터 참고서, 영어 원서, 사전을 사러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박 사장이 청계천에서 서점을 시작한 것은 1987년. 청계천 고서점의 최전성기였다. 헌책방 수만 해도 100여 곳이 넘었다고 한다.

"책이 귀했죠. 요즘이야 스마트폰만 켜면 궁금한 정보든 책이든 영화든 다 볼 수 있지만 그땐 안 그랬거든. 다들 여유가 없다 보니 조금이라도 저렴한 중고를 많이들 찾았고.
요즘은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죠. 수십 년째 단골로 오시는 분들. 그리고 많지는 않아도 젊은 친구들, 특히 고등학생들도 더러 찾아와요. 와서는 굉장히 어렵고 의식 있는 책을 찾는다니까."

 


▲ (왼) 청계천 고서점에는 각종 중고서적들이 모인다. 쌓여있는 책 중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책들이 더러 있다. (우) 사람이 평소에도 책을 가까이 해야 하거늘 갑자기 천장까지 책이 들어찬 좁은 공간에 들어간 강양, 몸둘 바를 모르고 어색해 하고 있다. 아, 책 좀 읽자.



교과서나 참고서만 나와있는 집도 있고 성격만 있는 가게도 있길래 서점마다 특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원래는 안 그랬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게가 작더라도 서점 대부분이 '종합서점'이었다. 20여 년 전부터 손님들 발길이 뜸해지니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계천 고서점가 간판 아래에는 '일반도서' '어린이도서' 교과서 참고서' '종교서적' '고서' 등 각 서점의 전공을 밝히고 있다.

한때 루머가 돌았다. 2003년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면서 인근 고서점이 다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었다. 헛소문이었지만 한때 번창했던 청계천 고서점가는 현재 30여 곳 정도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세상 모든 문제의 답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책이기에 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죠. 인터넷도 좋고 TV도 좋지만 책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이야기가 더 오래 남을 수 있게요."

이번 주말에 동대문에 옷 사러 가기로 했다고? 그렇다면 청계천 바람도 쐴 겸 청계천 고서점가를 들러보자. 중고 서적이라고 해서 무지하지 마시라. 책 상태가 아주 깨끗하다. 게다가 새 책도 일반 서점보다 10~20%가량 싸게 살 수 있다.

단, 현금을 챙겨가자. 마음에 드는 책 다 골라놓고 현금이 없다고 하면 곤란하다. 청계천 고서점가에서 현금인출기가 있는 곳까지 거리가 꽤 되기 때문이다. 


글. 강천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사진. 강천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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